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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부산 게시글 상세내용 - 서면 주점가의 추억(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파일, 상세 내용으로 구성)
서면 주점가의 추억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5-12-02 조   회 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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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나와바리'…또 다른 낭만·이야기는 '18번'이 되고

 

부산진 서면 주점가의 추억 - 서면일대 거리

2015- 부산 최고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서면일대 거리. 서면의 옛 천우장 앞, 일명 '우짱'은 한때 젊은이들의 만남 장소였다.

 

-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

- 재수 학원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

- 천우장 뒤 주점골목 아지트 삼아

- 일탈과 연애를 꿈꾸던 대표 거리

 

- 시 읊조리랴 '18번 노래' 부르랴

- 부산 예술인들 발길에 문턱 닳던

- 예전다방·청하장군 사라진 자리

- 영어이름 커피숍들이 꿰찼지만…

 

- 각종 시위·비보이 공연 행사에

- 아직도 개방과 소통의 공간으로

- 그 곳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어두워오는 거리에 하나 둘 네온사인이 켜진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질주하고 탄탄한 허벅지를 드러낸 젊음들은 서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휘황한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쥬디스 태화 앞, 탄저균 추방 시민 시위대와 경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율동으로 시민들의 눈길을 잡고 있는 학생들, 그들을 옹호하며 도로에 주저앉은 시민들, 시끄럽다, 라며 시위대를 향해 고함지르는 사람, 박수와 함성,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밤을 밝히는 휘황한 조명과 뒤섞여 그들을 포위하고 비보이, 하트, 반지 조형물 앞에서 또 다른 청춘들은 오늘의 시간을 핸드폰 사진 속에 봉하느라 정신이 없다. 동서남북 어디든 연결되는 중심지 서면은 개방과 소통의 공간으로 오늘도 이렇게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단과 중심의 서면, 부산 학원과 재수 명문으로 이름났던 영남 제일학원 등이 쥬디스 태화 뒷골목 쪽으로 오글오글 모여 있던 시절, 그 당시 재수학원을 다니던 J는 학교와 같은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학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똑같은 높이의 옆 학원 건물 옥상으로 뛰어 일탈을 시도했다고 한다. J가 학원을 빠져나간 일탈의 장소는 학원 주변 어느 주점가 2층 다락방.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J의 얼굴에 빙그레 떠오른 미소가 천진하다. 서면의 주점은 조급함으로 자식을 훈육하던 어머니의 품에서 잠시 자식을 빼내온 아버지처럼 J같은 수많은 청춘들을 보듬고 달래며 그들의 가슴에 여유와 낭만을 선사하던 장소였다.

 

 

 

 

부산진 서면 주점가의 추억 - 천우장 앞■천우장 앞이라면 다 통했다
"거가, 내 나와바리였다 아닌교." 
이 사람도 서면이 '나와바리'란다. '나와바리'라는 든든한 배경을 깔고 얼근하게 취한 이수원(51·금정구 남산동) 씨의 청년시절이 술상 앞에 푸짐한 안주로 차려진다.
"그날 내가 군대 갔다가 첫 휴가를 나온 날이었는데 너무 좋더라고. 들뜬 기분에 친구랑 우짱에서 만나기로 했지. 아, 우짱? 천우장을 줄여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어요."

 

 

 

 

 

 

 


50대 초반의 사업가 이수원 씨의 모습은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영락없이 청년이다. "우짱에서 만난 우리 셋은 천우장에서 범내골 쪽에 있던 '참새와 허수아비' 일명 '짹짹이'로 갔어요. 그때가 85년 말인데 천 원만 주면 철판에 찌짐이가 안주로 푸짐하게 나올 때였지요. 친구들이랑 술을 시켜놓고 주위를 사악 둘러보니 저만치 여자 셋이 앉아 있는 거라. 항상 세 명이 많아. 근데 이상하게 꼭 한 명은 예쁘고 한 명은 중간이고 한 명은 폭탄이야." 몇 잔 술로 불그레한 얼굴이 된 이 씨는 한껏 달떠 어느새 말투까지 바뀌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게 히내루야." 잔뜩 기대하며 이 씨의 이야기를 듣던 주위 사람들이 히내루라는 말에 박장대소한다. 주위의 반응에 한껏 고조된 그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 "눈빛이 반짝반짝하고 서로 부딪쳐야 돼. 그런 다음 뭔가 감이 오면 이제부터 작전개시지. 그런데 이때 한 명은 희생을 해야 되거든. 게임의 법칙이야. 폭탄을 잘 처리해야 그날 일이 성사 되는데 폭탄 제거반은 그냥 임무만 끝내고 자폭해 흐흐흐. 보통 여자들 쪽으로 가기 전에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폭탄 처리반을 정하는데 나는 휴가를 나왔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아 예쁜 여자가 내 차지가 됐지. 소주 한 병을 들고 적진으로 간 특공대는 일부러 히프를 여자 의자 쪽으로 바짝 들이밀고 비비적거려. 일부러 중간쯤 되는 여자한테." 자리에서 일어난 이 씨가 술병을 들고 실전처럼 히프를 비비적거리며 자리를 뺏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모인 일행들은 그 모습에 박수를 치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먼저 간 특공대는 예쁜 여자 옆에 앉으면 절대 안 돼. 이것도 게임의 법칙이야. 이쁜 여자가 한번 튕겨 버리면 끝이야. 그런 다음 뻐꾸기를 잘 날려서 분위기를 사근하게 익혀 놓을 무렵 같이 합석을 하는 거지." 싱겁게 끝난 청년시절이 다시 생각났는지 이 씨는 쩝쩝 입맛을 다시고 누군가 흘린 한마디가 우리들 웃음과 버무려진다. "우리는 천우장이 뭐 하는 덴지도 몰라, 근데 어데 있는 줄은 알아. 우리 또래들은 아마 천우장 모두 다 알걸."
지금도 서면 천우장 앞이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큰길 버스 내리는 녀석의 구부정한 어깨가 잘 보이는 지점/지하도 건너 불쑥 떠오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찰랑대는 지점/ 저쪽 뒤편 시장골목을 지나 치맛자락이 나풀대며 걸어오는 지점/ 서면 천우장 앞은 그렇게 걸어온 것들이 와서 멈추는 곳/ 주머니에 든 몇 닢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한번은 환하게 달려와 줄 것 같은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린 곳/ 없어진 지 오래인 서면 천우장 앞/ 그때 매정하게 돌아서 간 청춘이 불쑥 돌아올 것 같아/ 푸른 시절이 걸어 나간 길 저편을 악착같이 바라보며/ 조금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데/ 천우장 자리 들어선 새 건물 3층 천우짱노래방이/ 하염없이 목을 빼고 있는 첫사랑을 비틀고 있다 (최영철 시 '서면 천우짱' 부분)
맞다. 주머니 사정 넉넉하지 않았던 학생들과 각종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칼국수 골목과 잔술도 팔고 부침개도 팔며 이 씨 같은 청춘들의 히내루가 거미줄처럼 사방에 걸리던 주점골목 중간에 있었던 천우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피숍 노래주점들이 들어섰지만 부산사람들에게 최영철 시인의 말처럼 지금도 서면 천우장 앞이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예전다방의 특별한 퍼포먼스 
TOM N TOMS, HOLLYS, SMITH 등 온갖 영어 이름을 단 커피숍이 즐비한 서면 거리. 요즘 사람들은 거대 커피 회사의 체인점 커피 맛에 혹은 실력 좋은 바리스타의 손에 의해 정교하게 내려진 드립커피 맛에 길들여져 커피숍을 찾는다. 지금처럼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 사람들이 다방을 즐겨 찾던 시절, 천우장 뒷골목에 몇몇의 이름난 다방이 있었다. 그 중 일반인들 뿐 아니라 문인들 사이에서도 알려진 공간이 '탈' 동인이었던 시인 최정희 씨가 운영했던 예전다방. 그곳은 일반인들 뿐 아니라 가끔 예술인들도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문학을 사랑했던 최정희 씨는 몇몇 시인들과 함께 '예전시랑'을 개최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 낭송회 행사였다. 산복도로 시인 강영환, 2015년 원북원의 주인공 최영철 시인, 최정희 씨와 동인이었고 현재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최석 시인, 해성출판사 대표 김성배 시인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시 낭송회를 매달 정기적으로 열기도 했지만 때때로 시인들을 초청해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갖기도 하고 '시와 사진전', '시와 무용의 합작 공연', '특집 송년 시낭송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쳐 많은 호응을 얻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어둠침침한 다방 안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무대 천장에는 시뻘건 육고기가 매달려 흔들리고 시인은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시를 읊조린다. 빗줄기는 창문을 때리고 어느 짐승의 살인지 모를 흔들리는 육고기 위에 허공을 방황하던 죽음의 시구가 날아와 앉는다. 예전다방의 시 낭송회 한 장면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창밖에는 거센 바람에 나무가, 간판이 흔들리고 어둠침침한 다방 안에서는 정육점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시뻘건 육고기가 흔들리고…. 필시 죽음의 시를 읊조리는 시인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마구 흔들렸을 것이다. 시나 문학 관련 행사가 그렇게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절 이러한 예전다방의 시 낭송회는 다방을 찾았던 일반인들은 물론 문인들에게 충분히 이색적인 경험이자 특별한 퍼포먼스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문인들의 아지트 청하장군 
2000년도 무렵 문인들의 모임 장소가 중앙동의 한길, 양산박, 빛남 출판사에서 서면으로 옮겨진다. 예전다방 뒤 복개천을 사이에 두고 백악관 앞에 청하장군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청하장군은 부산의 모든 문화 예술인 전체가 드나들던 아지트였다. "내가 그때 마이 거칠었다. 장사치로 보고 그라믄 내가 얼반 쥑이뿌따. 한 8년 정도 했는데 시 소설 아동문학 음악 미술 모든 장르를 망라해서 전체가 단골이었다. 매일 20명 안팎의 문인들이 있었으니까." 청하장군의 주인장이었던 박 시인의 말이다. 청하장군을 출입하던 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고 윤정규 소설가이다. 윤정규 소설가는 밥 먹고 술 먹고 노래까지 해결되는 청하장군 2층 3층 4층을 모두 섭렵(?)하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후배들의 술값까지 곧잘 내주던 주군(酒君)이었다고 한다.
"그날이 토요일이었어. 몇 분이 취화선 영화를 보고 나서 오셨는데 윤정규 선생님이 내 노래 거기 좀 찍어 놔라 하시더라고. 내 노래 그거는 금영 노래기계에 101번만 누르면 나오거든. 가거라 삼팔선. 101번 누르고 나왔는데 또 불러. 어디 가노, 여 좀 있거라, 내 노래 거 안 있나 거 해라, 하시기에 101번을 또 눌러드렸지. 그 노래를 그렇게 너댓 번 불렀어. 나중에는 따블로 눌러놓고 나왔지. 선생님이 댁에 가시기 전에 내일 아침 전화로 나를 깨워다오, 하시더라고. 그 다음날 문학기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 조카들 학교 보내야 되기 때문에 내가 원래 밤에 잠을 안 자는데 그날은 일요일이라 옷을 다 입고 기대 있다가 잠이 들었어. 전화벨 소리에 놀라 깨서 문학기행 가려고 버스가 기다리는 장소로 택시를 타고 갔지. 가면서 윤정규 샘께 전화를 해라, 하고 말했는데 버스에 도착해 보니 선생님이 안 보이는 거야. 사연을 물어보니 속이 메슥메슥하고 안 좋으니 너희끼리 갔다 오이라 하셨다더라고. 그러고 나서 월요일에 돌아가신 거야." 박 시인의 포옥, 하고 내쉬는 한숨이 침묵을 빚는다. "주정이 판화가가 같이 마실 거라고 가지고 온 대나무 통에 담긴 술도 끝내 못 마시고…. 그날 문학기행을 같이 갔더라면 병원으로 옮겨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윤정규 소설가의 일화를 이야기하던 박 시인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말끝을 흐린다.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았던 사람이 윤정규 소설가 뒤를 이어 정태규 소설가야. 윤정규 선생님 18번은 '가거라 삼팔선', 조갑상 선생님은 '해운대 엘레지', 정태규 '골목길', 강동수는 예나 지금이나 '갈대의 순정', 김성종 선생님은 최고의 로맨티스트답게 '글루미 선데이', 최해군 선생님의 18번은 백두산을 찾어가자~ 그렇게 부르는데 제목은 몰라. 동보서적 박현주는 거의 매일 왔는데 마이크만 잡으면 호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최신식 노래만 불러 제쳤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듯이 술술 풀려나오는 박 시인의 이야기 보따리에 넋 놓고 앉아 있던 필자는 문인들의 18번과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떠올려본다. 문인들의 18번은 아직도 다 꿰고 있다는 박 시인의 회고담은 막힘없이 이어진다. 
"신생 편집회의를 하면 제일 질기게 술을 마셨다. 새벽 해장국까지 먹어야 헤어졌으니까. 서정원이가 노래를 잘했어, 모든 노래를 잘 하는데 김광석 노래를 하면 얼반…. 상 위에 올라가서 술잔과 밥그릇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고 다니며 춤을 추는데 한국문단사에 그런 인물 없을 거라, 근데 요새 마이 늙었더구만, 몬하더구만. 그땐 우리도 많이 젊었다."
그땐 우리도 많이 젊었다, 라고 말하는 박 시인의 목소리가 왠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밖에 싸움을 했다거나 하는 재밌는 일은 없었나요?"라는 질문에 입에 술 안 들어가고 밥 안 들어가고 마이크 안 잡고 있으면 논쟁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논쟁하며 젊음의 시간을 보냈던 그들의 시간이 어제 일처럼 세월의 때를 입지 않고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부산진 서면 주점가의 추억 - 나여경 소설가수많은 J 같은 청춘들이 다니던 부산·영남학원, 주점, 천우장, 청하장군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뜨거운 심장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여전히 그날 그 빛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출처 :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스토리뱅크 ( URL : http://www.storybusan.com/html/05/0501.php?mode=view&idx=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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