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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
  •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

    절영도는 ‘이곳의 말이 하루에 천리를 달려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써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태그봉래산 | 산제당 | 아씨당 | 절영도 | 국마장

기본정보

산제당산제당산제당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봉래산(蓬萊山, 395m)에는 산제당과 아씨당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영도(影島)는 일찍이 절영도(絶影島)라 불렸다. 육지와 인접하며 말을 키우기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춰 일찍이 나라에서 말을 키우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다. 절영도는 ‘이곳의 말이 하루에 천리를 달려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써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절영도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이미 명마가 생산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김유신전에는 성덕왕이 삼국통일의 업적을 이룬 김유신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손자인 대아찬 김윤중에게 절영산에서 생산된 말 1필을 내려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군마 양육의 임시 보관지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당시 나라 땅 최고의 군마 양육지는 제주도였다. 제주에서 양육된 군마는 배에 실려 절영도에 내려진 후 이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몸 상태를 제 궤도에 올린 뒤 전국으로 옮겨졌다.

제주에서 실려 온 군마는 반드시 절영도 군마 사육장의 남문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나갈 땐 서문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인가부터 남문으로 들어온 건강한 군마가 서문으로 나갈 때쯤 병이 들어 죽거나 죽기 직전의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서, 군마의 책임자인 부산진 첨사가 식음을 전폐 할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정이 이쯤되자, 절영도에는 한 선녀가 노복 두 사람을 데리고 절영도로 들어가는 것은 보았는데,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이 같은 군마가 죽는 것이 끊이질 않자 섬에서는 '혹 그 선녀와 하인들의 소행이 아닐까'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정발(鄭撥, 1553~1592)이라는 무관이 부산진 첨사로 부임하여 재직하게 되었다. 그 역시 선녀로 인해 군마가 죽어 나가는 것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밤 정발 장군의 꿈속에 한 선녀가 나타나 장탄식을 하며 이렇게 읍소했다. "이 몸은 칠원성군(七元星君)으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아 천상에 있지 못하고 축출 당해 탐라국 여왕이 되었사옵니다. 이후 저는 탱자나무를 심어 인력으로는 도저히 함락시키지 못할 백년대계의 견고한 성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려국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자기들의 군마 양육지로 조성하기 위해 성 주변에다 갈대를 심어 수년 동안 키운 후 불을 질러 성 안으로 침입했습니다. 역부족이라 여긴 저는 굴욕적인 화친에 응하는 동시에 최영 장군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성은 이후 군마의 양육지로 변해버렸지요. 큰일을 하시는 최영 장군은 저의 일편단심을 이해하지 못해 이 몸은 여러 해 동안 독수공방 신세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이 신돈의 음해로 좌천, 유배되어 절영도에서 귀양살이를 한다는 풍문을 듣고 천신만고 끝에 절영도를 찾았으나 장군은 이곳에 유배된 적이 없다고 주민들이 말을 하더군요. 어느 누구한테도 의지할 데 없던 이 몸은 적막한 이곳에서 한 많은 고독한 영신(靈神)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사당을 지어 나를 모시면 절영도의 군마도 무병 충실할 것이며, 장차 이 지역에 살게 될 주민 중 나를 모시는 자는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꿈이라 하지만 사연이 너무도 구구절절해 부산진 첨사인 정발 장군은 간밤에 본 선녀의 꿈 이야기를 조정에 상소했다. 조정에선 즉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1551~1592)에게 하명하여 아씨당(阿氏堂)이라는 제당을 짓고 1년에 두 번씩 제사를 지내라 명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이 선녀의 혼을 위로하고자 산제당과 아씨당을 짓고 해마다 제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부터는 절영도의 군마가 무병 충실해졌다고 한다. 이는 절영도 군마 목장지와 아씨당에 얽힌 전설이다..

신라시대부터 절영도의 국마장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산제당과 아씨당은 원래 영도초등학교 부지 안에 있었던 것을 1915년에 지금의 영도 봉래산 중턱(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 2가 141번지)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산제당과 아씨당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음력 1월 15일, 9월 15일)에 걸쳐 당제를 모신다. 아씨당은 지금까지 영도 주민들의 태평성대와 만사형통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성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부산에선 최고의 마을 신앙으로 손꼽힐 듯싶다.

 

 

 

[2016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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