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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백스님과 조엄
  • 낭백스님과 조엄

    자신의 입으로 낭백스님의 후신이라고 말 한 적은 없으나, 낭백스님의 원력을 성취시켰으므로 사람들은 조엄이 낭백스님의 환생이라고 믿는다.

      태그조엄 | 범어사 | 낭백스님

기본정보

범어사조엄

 

조선 중기 범어사(梵魚寺,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에 법호가 낙안(樂安)인 낭백(浪伯)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낭백스님은 일찍이 범어사에 입산해 신심을 갖고 부지런히 학문을 갈고 닦으며 수행정진 하였다. 특히 보시행을 발원해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타인을 위해 바쳤다. 무엇보다 스님은 커다란 원력을 세워 생을 거듭하면서까지 그 염원을 결국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교의 폐해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었다. 특히 조선 중기에 이르러 불교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해 승려들을 핍박하기 위해 일개 사찰에 부여된 부역의 수가 무려 40여 종에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스님은 이러한 당시의 사정을 뼈아프게 개탄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부역만은 면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스님은 남몰래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하루라도 속히 금생을 마치고 내생에는 큰 벼슬에 올라 도 닦는 스님들이 관권 구속과 혹사 없이 도를 닦을 수 있도록 제가 보살피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스님은 설사 금생에 안 되면 내생에라도 부역을 면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하리라 마음먹고 원력을 세웠다. 스님은 보시정신을 갖고 자기가 가진 재물을 모두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나눠주었으며, 빈 몸으로 나아가서 힘이 닿는 대로 무주상보시의 큰 원행을 스스로 실천했다.

 

스님은 기찰마을(현 금정구 부곡3동) 부근에서 동래로 들어가고 나가는 황산도(黃山道, 영남대로의 마지막 구간) 길목 큰 소나무 밑에 샘을 파서 행인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너른 밭을 개간해 참외, 오이, 수박 등을 수확해 행인에게 무한정 보시했다. 또 기장으로 넘어가는 칼치재에 초막을 지어 거기서 짚신을 삼아 고개를 넘나드는 행인들에게 신을 시주하는 등 온갖 일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

 

스님은 많은 일을 하느라 수행 정진을 많이 하지 못했고 숙명통(宿命通)을 하지 못했다. 숙명통은 자기나 다른 사람의 생애를 꿰뚫어 훤히 알게 되는 신통력이다. 과거 생을 알 수 있는 신통력을 갖지 못한 스님은 다음 생에 자신의 원력을 확인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증명을 남겨놓았다. 하나는 나라의 고급 관리가 되어 어산교 앞에서 말에서 내리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스님이 쓰던 방을 봉해 두었다가 스스로 열 것이며, 셋째는 사찰의 어려움을 물어서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금정산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물심으로 많은 보시를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범어사 뒷산에서 굶주린 호랑이에게 보시하였다.

 

세월이 흘러 경상도 순찰사로 조엄(趙儼, 1719∼1777)이 부임하여 각 군을 시찰하다 동래군에 이르렀다. 봄날이라 경치가 좋아 범어사를 찾게 된 그는 개간된 오이밭과 감자밭을 지나다 깊은 향수를 느꼈다. 일주문인 조계문에 다다른 조엄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사찰은 크게 깨달은 부처가 있는 곳이기에 어떤 관리라도 조계문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조엄은 일주문에서 내리지 않고 어산문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범어사의 금강계단에서 무수히 절을 하고 난 그는 어떤 스님에게 사찰의 사정을 물었다. 스님은 잡역으로 몹시 힘든 사찰의 사정을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조엄은 사찰의 부역을 면제해 주기로 약속했다. 주지 스님의 차 대접을 받으면서 낭백스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 조엄은 이십여 년 동안 봉해져 있던 방문을 열게 했다. 방문을 열어보니 ‘개문자시폐문인(開門者時閉門人)’이라는 유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조엄은 자신의 전생이 낭백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관례를 깨고 어산교에서 내렸으며, 문을 닫은 자가 그 문을 열 것이라는 예언을 실행한 것이었다.

 

조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일본으로부터 고구마를 들여와 백성들의 구황에 기여했으며 저서로 『해사일기(海槎日記)』가 있다. 관리 조엄은 평생을 통하여 많은 불사를 하였다. 자신의 입으로 낭백스님의 후신이라고 말 한 적은 없으나, 낭백스님의 원력을 성취시켰으므로 사람들은 조엄이 낭백스님의 환생이라고 믿는다. 범어사 어산교 아래로 내려가면 비석이 모여 있는 비석골에는 ‘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이 있다.

 

 

[2016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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