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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 오태균
  •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 오태균

    연주가로서 음악교육자로서 부산 음악 발전에 현저한 족적을 남겼다.

      태그오태균 | 교향악선구자 | 클래식 | 음악교육자

기본정보

오태균교향악

 

오태균(吳泰均, 1922~1995)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아버지 오영세(吳寧世)와 어머니 이신덕(李信德)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보였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33년에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흘러나와 듣게 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평생토록 사랑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에덴공원 안에는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 ‘오태균(吳泰均 음악비’가 세워져 있다. 음악비 정면에는 그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의 주제선율이 악보가 새겨져 있고, 그 뒤에 김목운 시인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오태균은 1938년 중학교 3학년 때 부친을 따라 부산으로 이주하여 한때 야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운동을 단념하고 이때부터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1943년 8월 경남 진양 태생의 강찬숙과 결혼했고, 1947년경 부산 제2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출하였는데, 그때 마침 고려교향악단이 해산되고 지휘자 임원식·김생려에 이어 미국인 로프 쟈코비가 이끄는 국립서울교향악단이 조직될 무렵이었다. 오태균은 당당히 오디션을 통해 국립서울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1948년에는 대전 공회당에서 첫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그 후로 6·25전쟁 중에도 지휘자 김생려를 주축으로 하는 해군 정훈음악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4 후퇴로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피난 시절임에도 오태균의 재능을 인정한 해군 관계자의 도움으로 일본 동경국제음악학교로 유학하여 3년 동안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우면서 폭넓게 클래식의 세계를 섭렵하여 내실을 다졌다.

 

1952년부터 부산에 정착한 오태균 선생님은 연주가로서 음악교육자로서 부산 음악 발전에 현저한 족적을 남겼다. 1954년 오태균은 부산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1955년에는 전쟁 후 처음으로 대청예식장에서 현악 4중주단을 조직하여 부산대학교 대강당, 남성여자고등학교 강당 등에서 다양한 연주회를 꾸준히 이끌어갔다. 그해 5월에는 두 번째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고, 10월에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부산대학교 학생을 모아 부산에서 규모가 갖추어진 첫 관현악단인 부산대학관현악단을 창설하였다. 1957년 8월에 부산의 초기 관현악 운동을 주도한 오태균의 끈질긴 노력으로 드디어 부산교향악단이 탄생하였다.

 

1962년에는 5년간 이끌어온 부산교향악단이 부산시립교향악단으로 거듭 나게 되었는데, 이때 초대 상임 지휘자를 맡아 9년 동안 연 평균 6회의 연주회를 갖는 등 모두 53회의 정기 연주회를 개최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었다. 오태균은 1950∼1960년대까지 지휘자로 왕성한 음악 연주 활동을 하면서 날카로운 비평 활동도 하였다. 동시에 음악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음악 감상회를 열고 해설을 맡기도 하였다. 1954년부터 1970년까지 중구 광복동에 주로 위치했던 음악실인 칸타빌레·망향·클래식·아폴로·백조 등에서 20년 가까이 300여 회의 정기 명곡 감상회를 열어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약 9년 간 활동한 후에 후배 한병함에게 길을 열어주고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음악과 교수로서 후진 양성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교학처장(1977년~1979년)과 대학원장(1985년~1987년), 학장(1988년~1992년)을 거쳐 초대 총장(1992년 3월~11월)을 맡아 대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오태균은 대학에서 실내악과 관현악 교육에 열정을 바쳤다. 정기 관현악 연주회를 갖는가 하면 직업 음악인으로 구성된 부산까메라타앙상블을 창단해 부산악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지칠 줄 모르고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62세에는 미국 유니온대학에서 철학박사(1984년 5월) 학위를 취득하였고, 1992년에는 대학에서 총장직까지 맡아 교육 행정 일선에서도 적지 않은 공적을 쌓았다. 1995년 4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2016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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