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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동래별장
  •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동래별장

    동래별장은 원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지은 별장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하자마별장’이라 불리웠다.

      태그동래별장 | 하자마별장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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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별장(東萊別莊)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126-1번지에 위치한다.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1번 출구에서 왼쪽으로 가다 온천교 사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금강공원로를 따라 온천장교차로를 지나 280m쯤 삼거리에서 금강로124번길을 따라 210여m를 걸어 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동래별장은 원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지은 별장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하자마별장’이라 불리웠다. 하자마 후시타로(迫間房太郞)는 1880년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이호이[五百井]상점의 지배인으로 부산에 건너와 1899년 독립했다. 그는 고리대, 토지약탈과 미곡상으로 부산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 하자마는 부산상공회의소 특별위원, 경상남도회 부의장, 부산번영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부산토지주식회사 사장과 부산상업은행과 조선저축은행 이사를 지내는 등 부산경제를 좌지우지하였던 인물이다. 부산지역의 토지와 가옥 등을 수매하여 굴지의 부동산업자로 부산 제일의 재벌이 되었다. 1930년대에는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지역에 25,740㎦(780만평)의 토지를 소유하여 도내 소작지의 3.5%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별장은 부산진 수정산과 동래에 있었다. 1913년 준공된 수정산 별장은 하자마성[迫間城]으로 불릴 만큼 웅장했다고 한다. 동래에 있는 하자마별장[迫間別莊]은 1912년에 이미 있었던 것이며, 수정산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29년 8월 옛 별장 옆에 새 별장을 신축하였고,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금정산의 송림으로 정원을 꾸미고, 자연석을 사용해 연못을 만들었다. 1929년과 1935년에는 일본 천황족이 머물렀는데, 이들을 위해 독자적인 탕원을 조성하여 하자마탕원[迫間湯源]이라 불렀다. 금정산에서 가져온 돌을 재료로 하여 욕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동래별장 건물의 전체 구조와 배치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부자의 위세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금정산 자락에 9,900㎡(3,000여평)의 대지 위에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으며, 별장의 담장이 높아 밖에서는 안을 볼 수가 없다. 담장을 높게 쌓은 이유는 주변의 좋은 경치를 별장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도였다고 한다. 높은 담장 안에 나무를 심고 인공 연못을 파서 금정산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들여 이곳에 흐르게 하였다.

 

본관은 목조 2층 건물 660㎡(200평)와 별채, 정자, 석등, 석탑 등을 세우고 마당에 모래를 깔아 인공장식을 만들었다. 별장 입구 좌우에는 일본형 석등 4기가 세워져 있다. 석등의 몸체에 음각 된 무늬가 특이하고 지붕모양이 뾰족하여 마치 병사의 투구를 연상케 하며 일부는 일본식 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연못 옆에 3층 석탑이 있고, 신관 앞에는 13층 석탑이 있었다. 13층 석탑은 전형적인 일본양식이다. 석탑은 기단 하부가 3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옥개석이 13층으로 쌓아 올린 탑신을 세우고 상륜부는 일본형의 목발이 동서남북에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원을 양각하고 그 위에 보주를 꽃아 놓았다.

 

이 건물은 제국주의 수탈자본가의 별장이었다가,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9월 미군이 부산에 진주하면서 양산·밀양·울산 등을 관할하는 경상남도 제3지구 미군정청이 군정사무를 보는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지금의 ㈜호텔농심 자리에는 미군 G-2부대가 주둔하였다. 6.25전쟁 때 부산 임시수도 시절 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동래별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부산의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6.25전쟁 이후 민간에 매각되었고 1960~80년대에는 고급 요정이었다. 1965년 고급요정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후 국빈급 인사는 물론 군사정부 시절 부산에 온 대통령도 들렸을 만큼 관광 명소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가야금과 장구의 장단에 부채춤을 추는 기녀들이 즐비했으니 하룻밤 연회가 끝난 이튿날에는 수십 벌의 한복이 별장 앞 세탁소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980년대 이후 동래온천장의 쇠락과 더불어 휴·폐업을 거듭 해오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3년만인 2000년 10월 국악공연을 즐기면서 특급호텔 수준의 전통 한정식을 제공하는 관광음식점으로 탈바꿈하였다. 지금은 우리 전통의 멋과 맛을 계승하고 궁중요리를 재현하는 한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

 

 

[2016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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